창원의 성주사는 차가 엄청 밀려서 몇시간 걸린다고 하고 셔틀버스도 40분은 기다린다고 해서 제외하고 불곡사랑 봉림사 쪽으로 갈까 하다가
마산의 정법사를 선택했습니다. 1912년에 일본 불교(정토종)에 대항하기 위해 창건되었으며 국민들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시내 안에 있기에 포교당이라고 합니다.
1927년에는 배달유치원(현 대자유치원)을 설립했고요. 지금 봐도 꽤 큰 유치원입니다.
입구 왼쪽에 있는 석탑에서는 소원을 비는 종이 같은 게 있었고
퐝법사와 함께하는 여러 체험 학습이 있었는데 어린이들을 위한 거 같았습니다. 퐝법사는 정법사의 캐릭터인 거 같고요.
입구 왼쪽에는 관불이라고 아기 부처에게 물을 부어주고 시주하는 함이 있었는데 보통 천원을 넣더군요.
입구부터 중앙의 건물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연등
처음 보자마자 느낀 게 현대식 건물이라 내가 알던 절하고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이건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기 위한 포교당이라는 성격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
중앙으로 줄을 따라 들어가면 왼쪽에 공양간으로 내려가라는 푯말이 있었고
1회용 용기를 사용해서 식사를 주고 있었습니다.
식탁은 대충 세어보니 350석 정도였는데 정말 크긴 하더군요. 6월 3일이 선거라서 선거운동원도 절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나물밥에 김치를 넣어줬고, 국은 동치미인 거 같은데 걸쭉한 것이 전분을 넣은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고추를 넣었는지 조금 매웠습니다. 국이 좀 이상했어요.
백설기랑 330ml 의 하이트 생수도 주셨습니다.
본당 입구 오른쪽에 있던 증장천왕. 보자마자 관우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 다 무신이긴 하네요.
양 옆의 벽에는 위패가 있었는데 장례식때 일정액의 돈을 내면 절에서 보관해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법당에서는 사람들이 왼쪽에 있는 방석을 가져와서 큰절을 하고 다시 원래대로 두고 있었습니다. 저도 했고요.
저 안쪽에는 유비같이 생긴 인형들이 있던데 뭘까요?
밖에서 음료를 파는 카페 옆에 있는 종이었는데 범종을 치는 당목은 움직이지 못하게 바닥에 쇠사슬로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나가서 위로 올라가는 길에는 중국 자사호를 파는 차환이란 가게가 있었고 삼학사로 가는 길에는 가파른 가고파 꼬부랑길이 있었습니다.
꽃봉오리가 처음 맺히고 피어날 때는 선명한 황금빛 노란색을 띱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햇빛을 받으면서 꽃잎 가장자리부터 오렌지색, 다홍색, 그리고 사진처럼 화사한 핑크빛(연분홍색)으로 물들어간다네요.
이제 다시 삼학사 쪽으로 가려는데 감니불~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위를 보니 절이 있는데 입구가 어디인지 몰라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가가니 아주 좁고 가파른 골목길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려오더군요.
여기가 입구이구나 싶어서 올라가니 할아버지가 저보고 저 할머니도 돌아가셨지. 이러기에 오른쪽을 보니 문이 닫힌 집이 있던데 달동네 느낌이었습니다.
하여튼 다시 올라가는데 이게 입구가 아닌 거 같아서 지도를 보니 멀리 돌아가라기에 싫어!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더 올라가니 절 입구로 보이는 게 나타났습니다.
입구인데 아무런 글자도 없기에 무슨 절이지 하면서 들어가니 오른쪽에 차들이 있기에 이 좁고 가파른 길을 차가 어떻게 들어왔지? 싶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기에 여기가 밥을 먹는 줄인가 싶어서 같이 줄을 섰죠.
그런데 꽤 기다려도 줄이 안 줄어들어서 앞을 보니 밥이 없어서 20분 이상 기다리라면서 떡을 주었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기다리다 지쳐서 밥은 안 먹기로 하고 위로 올라가니 금속으로 된 가파른 계단이 나타나고
높은 곳에 있는 자그마한 크기의 법당이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감니불 소리가 계속 들리던데 가까이서 들어보니 석가모니불을 아주 늘어지게 발음해서 서으가모니불~ 의 뒷부분이 감니불로 들렸던 거였습니다.
왼쪽으로 돌아나오니 아기 부처에게 물을 뿌리는 곳이 있었고 왼쪽에는 보리수열매가 있더군요. 아직 익지 않았습니다.
나가려고 하니 밥이 나왔다고 해서 다시 줄을 서서 먹었습니다.
상추, 괭이밥, 오이, 김가루, 고사리, 깻잎, 시금치, 버섯, 당근 등으로 들어가는 게 많아서 맛있었고 미역냉국은 시원하고 짭짤했습니다.
작은 규모의 절밥이 더 맛있더군요. 높은 곳이라 그런지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좋았고요.
그런데 사람들을 따라 내려가니 그게 정문이었고 제가 처음에 들어간 곳은 뒷문이었던 거 같습니다.
다시 삼학사를 가려고 나오니 멋진 정원이 있던 주택도 있었고
금룡사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절이 있었는데 올라가니 이미 공양은 끝났다고 했습니다. 2시 조금 넘은 시각이었으니 2시 전에 가야 먹을 수 있나보네요.
입구 오른쪽에 있던 배가 나온 스님? 가슴 쪽에 500원 동전들이 있었고 오른손에는 중국 화폐였던 원보 형태의 돈을 들고 있더라고요.
구석에는 작은 스님들이 있었고요. 중국 스님들처럼 보였습니다.
근처에는 일반 주택 형태의 작은 미암사라던가 무학사도 있었습니다.
근처 합포고등학교에서 만든 거 같은 각종 별자리의 장식물
해주정씨화랑회라는 건물이 나오던데 개인이 소유한 유적인가요? 검색하니 해주정씨대종친회가 나옵니다.
삼학사는 2시 39분 쯤에 도착했는데 여기도 공양은 이미 끝나서 입구만 구경하다고 나갔습니다. 길 옆이라 접근성은 좋았고 4층 건물이었으며 주위에 다른 법당은 없었습니다.
앞에는 밤에 불을 켜면 반짝이는 장식물도 있었고요.
인도식의 코끼리랑 전기로 움직이던 연꽃이 인상적이었네요.
삼학사 뒤에 있던 건물이었는데 검색해보니 상산김씨 경남동부 종친회의 지경문이었습니다.
위의 해주정씨화랑회처럼 종친회 건물인 거 같습니다. 같은 성씨들이 모이는 친목회 건물인가요?
계단 위를 봐도 숲만 보이고 절이 안보여서 들어가보진 않았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울려퍼지던 풍경 소리가 좋았습니다.
안에는 기부를 하면 주는 양초로 된 연꽃이 있었고
제일 큰 법당 왼쪽의 삼성각이라는 곳에는 불교 벽화와
사찰에서 예불을 올리거나 각종 재(齋), 축원 의식을 행할 때 손에 들고 보며 염불하던 실용적인 불교 의식 서적인《석문의범(釋門儀範)》이라고 합니다.
삼성각 오른쪽 구석에는 이런 작은 스님도 있었고요.
내려가는 길에는 농업용 모노레일도 있었고요. 경사가 가파라서 쓰는 거 같습니다.
여기를 나오니 3시라서 끝내고 집에 왔는데
오늘 여러 절을 가봤지만 중국 느낌이 나는 곳과 인도 느낌이 나는 곳을 보니 원래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파되었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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